나는 여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보다는, '누구의 아내'일 때
정상성을 획득하고 더 많은 자원을 갖게 된다. 때문에 여성에게는 사회적 시민,
노동자의 정체성보다 아내, 어머니 등 성역할 정체성이 우선시되며, 여성의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은 성역할로 환원된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p. 161
며칠전 만난 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여성이라는 게 자신을 얼마나 크게 규정하는지
확연해지더군요. 그러고 나서부터는 여성 작가들을 편애하게 되었어요."
나 역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가부장제 한가운데 들어와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 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윗글에 공감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필자로 모시고 싶어했던 정희진 선생님이 그간의 글들을 묶어 책을 냈다.
책을 사자마자, 읽고 있던 베스트셀러 소설을 팽개치고 단숨에 읽었다.
읽는 구절구절 눈물로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은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상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끊임없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렇게 말하지만 나 역시 그렇다. 페미니즘은 무지몽매한 남성 혹은 사회를
계몽하기 위한 이론이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남성을 중심으로 건설되어 여성이 인식주체가 되어본 적이 없는 사회에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과 역사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매우 '쎈' 책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시길... 최근 화두였던
성매매에 대한 자유주의와 여성주의의 입장 충돌이나 매 맞는 여성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가정(가정은 사회가 아니란다, '집'사람은 사람이 아니란다)
안에 봉인하는 일반적인 문제, 여성을 성적으로 규정하고 지위를 매기는 가부장적
태도, 성 인지적 관점에서 바라본 인권, 군사주의와 성 인지적 시각(심심하면 그럼 여자도
군대가라는 말이 왜 말이 안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명쾌한 해설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걸 왜 몰랐던고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섹시즘, 남자들에 갇힌 여자"(정혜경 지음)를 추천한다.
여성이 그동안 갖지 못했던 언어와 인식이 왜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난 여성들이 더 많이 발언하기를 바라고, 더 많이 나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