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여행자, 이방인

양화 2005. 10. 31. 13:50

 

 

우리는 이방인이 되기 위해 떠난다. ...... 까맣게 어렸던 시절,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선배는

돌아와서 내게 말해주었다. 그곳에 있으면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고.

사람들은 물어본다. 어디서 왔니? 너는 누구니? 뭐 하는 사람이니? 그런 질문에 대답하다보면,

자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완벽하게 낯선 곳에서 이방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 익숙한 것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는 그곳에서, 가장 낯선 존재처럼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로망. 나를 이끌어 낯선 곳을 터벅터벅 걷게 하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이리라.

 

여행자의 로망 백서, 박사.이명석 지음, p. 157-158

 

얼마전부터 여행에 대한 갈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나 결혼 전에는

제법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제법 돌아다니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는 답사반이란 걸

만들어 내 돈 들이며 사전답사를 다녔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들이 아름다움의 원체험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지금처럼 되기 전의 안동 하회마을 새벽의 고즈넉함이나, 언제 올지 모를,

과연 그곳에 설까도 의심스러웠던 낡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코펠을 꺼내 물을 끓이고 맥심 커피를 타 마시며 노닥거리던 때의 석양이, 부석사까지

들어가던 길에서 팔던 그 새콤달콤한 홍옥의 냄새가 여행을 떠올리면 스산한

지방 시외버스 터미널과 함께 떠오른다.

 

아이가 생기고 난 후부터는 혼자 여행은 꿈도 꾸어본 적이 없었고, 가서도 불편한 마음,

그리운 마음으로 그런 거 저런 거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지금 여행이 이다지도

고플까. 여행의 갈망을 달래보고자(그러나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산 책 <여행자의 로망 백서>를 읽다 보니, 저 구절이 가슴을 친다.

아마도  나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오르는 중인가 보군.

열망대로 떠난다면, 그걸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가득하긴 하지만 그래도 떠나고 싶다.

그러면 그 길 어딘가에서 무엇인가를 번쩍,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