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책의 로망
게다가 신경발작 외의 의학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나는 얇은 소책자보다는 크고 두꺼운 책이 더 좋다.
소책자의 경우,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는데,
아무리 즐기면서 천천히 읽어도, 마비용역에서 쥐씨유역까지,
혹은 페라슈역에서 파르-디유역까지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반면, 두꺼운 소설은 든든하게도 일주일을 족히 버틴다.
마치 겨울 내내 장작이나 가게 문을 닫는 연휴 동안 피울 담배를
충분히 마련해 놓은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두꺼운 책의 경우 불안도 그만큼 크다. 나는 첫 삼분의 일을
게걸스럽게 읽어치운다. 이어 책 중간, 읽기 편하고 은밀한 그 V가
다가오면 속도를 늦춘다. 그때부터 불안이 시작된다. 이제 겨우 반밖에
안 읽었는데 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끝이라는 낱말을 향해 굴러떨어진다.
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p. 203-204
소지품 속에 책이 꼭 들어가는 사람들의 경우,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상황은
보던 책을 다 읽었는데 차 탈 일이 있는 경우다. 그럴 때는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던 이상한 잡지를 가판대에서 사 들지 않을 수 없다.
휴가를 갈 때 꼭 두꺼운 책을 넣어가는 건 그 사이 읽던 책을 다 읽을까 봐서다.
지난 해 여름휴가와 이번 여름휴가가 그랬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별로 얇지도 않은 책이었는데,
중간에 다 읽어버려 날 초조불안하게 했다.
매번 책을 가져가서 다 읽고 오지도 못하는데, 뭐,
이러면서 이번 여름엔 심윤경의 '달의 제단'을 가져갔다가
차 안에서 다 읽는 바람에 잡지도 구할 수 없는
시골 구석에서 초조불안에 떨어야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매 페이지
찾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지만 프랑스 문학이나 기타 장르의 책들이
주르르 적힌 각주의 압박 때문에 조금 힘겨울 수도 있다.
(모두 짧게는 두 쪽, 길면 너댓 쪽인 50꼭지의 글 가운데 각주가 없는
것은 단 세 편 뿐이다. 어떤 꼭지는 단 네 쪽의 본문에 두 쪽의 각 주가 붙어있다)
참, 여기서 언급한 '다른 의학적 고려'란
".. 내 가방을 축 늘어지게 만들고, 내 어깨에 톱질을 해대고,
내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게 만들고, 게처럼 걷게 한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손에서 자꾸 떨어진다. 그래서 이두박근에 무리를 주지
않은 채 눈높이에 맞게 유지하려면 배 위에 베개를 겹쳐 받치는 수밖에
없다. 앉아서 읽을 때는 무릎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목 통증과 관절 통증은 따놓은 당상이다. 나는 돌리프란 두 알을 먹고
목과 어깨에 방샹성 진통제 돌픽(피망이 주성분이다)을 탄두리 치킨과
비슷해 보일 정도로 듬뿍 바른다." p. 205
더 자세한 사항은 책과 바람난 여자, '독서광 일반병리학'을 참고할 것!
덧붙이자면, 이 책은 아주 얇고 작은 형광 분홍색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