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양화 2013. 3. 29. 19:15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그녀는 못생긴 편도, 매력이 없는 편도 아니었다. 내 어법이 이렇게 졸렬하고 인색하다. 누군가는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이라고 긍정하는 순간, 불현듯 그 규정의 한 모서리가 대상과 어긋나는 듯한 불편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대상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대신, 아름답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라든지 하는 조잡한 이중부정을 각주처럼 달아놓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이다.   47-49

 

무엇인가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것을 완전히 잃고, 잃었다는 것마저 완전히 잊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 언저리를 헛짚는 순간이다. 택시기사가 보았다시피 한겨울 새벽 거리를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심야 택시의 묵시록적인 관통 속에서 휙 지나가듯 내 첫사랑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완성된 순간 비스듬히 금이 가버렸다.   118-119

 

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문학이 문학다운 순간은 이렇게 망설이고, 비스듬히 금이 가는 순간이다. 권여선의 소설에는 그런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