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어쨌든, 따뜻한 사람이 좋아

양화 2011. 11. 1. 21:00

 

원서를 읽었다는 건 아니고 -_-...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된 모양.

 

다카노 씨 - 다카노 하지메는 서적 코너의 치프다. 일반적인 직책으로 고치자면 계장급이 된다. 아직 갓 서른 살의 젊은 나이다. '로렐'에서는 엄밀한 능력제일주의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지 오 년 만에 치프 매니저로 올라간 예까지 있다.

또 한 가지, '로렐'에서는 사원들끼리 서로를 부를 경우, 직책을 빼고 부른다는 방침도 취하고 있다. 직종이나 역할 분담에 맞춰 세분화되어 있고 이동에 의해 자주 변화하는 직책을 외우기 위해 사원들이 시간을 쓰는 것도, 고객이나 거래처에 수고를 끼치는 것도 비합리적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명함에도 직책은 인쇄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대규모 소매업계는 생존경쟁이 치열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은 얼른 잘라내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현장에서 일하는 점원들의 경우 '편하게 행동해도 된다'는 제도도 있다.

                                                                                                        - 미야베 미유키 지음, 마술은 속삭인다, 63

 

이어령 샘 원고 때문에 머리가 계속 복잡했는데, 원고 만지는 건 잠깐 하지 말라는 말에 옳다구나 걷어치우고 이틀 동안 머리를 텅텅 비우고 미야베 미유키 탐독. 이 대목을 읽고는 능구렁이 같은 미야베 여사, 하고 실실 웃었다. 소설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해 한 조각이라도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원대한 목표 말고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면서 나름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이런 거 아닐까 생각하면서. 자기가 마음에 품은, 상상한 세상 그려넣기. 전면적인 세상을 그려넣기야 쉬운 일이겠나. 하지만 이런 식으로 슬쩍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장상이나 상사상이나 집어넣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엄밀한 능력제일주의를 시행하는 서점, 직책을 빼고 부르는 합리적인 인간관계, 현장 점원들끼리 친밀함을 나누는 서점이라... 현실적인 듯 보이면서 묘하게 비현실적이다. 미야베 여사의 따뜻함이 돋보이는 대목. 때때로 유능한 소설가는 조금은 잔인한 성품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상황이 너무 지독해서 나 같으면 글을 쓰는 동안 등장인물에게 연민이 생겨버릴 것 같은 극악한 상황 속에 인물을 몰아넣고 극단까지 밀어부치는 일을 해야 하니까. 성취로 이름 높은 예술가들의 실제 면면이 개인적으로는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인 경우가 많은 걸 보면 맞는 말일지도. 이런 점에서 미야베 여사의 책은 안심하고 읽을 수 있다. 그이의 책 속에서는 제 아무리 살인자라도 이해할 법하니까, 몸서리처지게 싫은 인물은 단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으니까. 나왔다고 해도 반드시 통쾌한 방법으로 응징당한다. 온유하고 느긋하고 반듯하면서도 정의의 수호자인듯, 비극의 희생양인듯 수선 떠는 일이 없는 미야베 여사 책의 주인공들을 보면 늘 세상에 기대를 품게 된다. 하하, 큰 줄거리나 책의 주요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는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