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 비로소 화해, 혹은 이해
딱히 홍상수 감독이랑 싸운 적도 없고, 홍상수 감독이 나 따위에게 잘 보이려 애쓸 리도 없지만, '하하하'를 보면서 비로소 홍상수 감독과 화해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들 앞다퉈 그의 영화를 칭찬할 때도 난 홍상수 감독 영화가 좀 불편했다. 왜 불편한가, 가끔 생각해보곤 하는데 - 사람들이 홍상수 감독 영화가 좋다고 할 때마다, 혹은 칭찬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잠깐씩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 때문인가 한 적도 있는데... 그런 거 같진 않다. 나는 여성감독들이 만드는 영화 속의 남성도, 남성감독들이 만드는 영화 속의 여성들이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렇게 만든 여성이나 남성은 재미가 없을 거 같다. 그러니 그런 건 없는 편이 낫다. 무지의 장막이니 어쩌니 해봤자 어떤 개인이 인간을 이해하는 건, 그냥 그 사람으로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내가 싫어하는 건 그가 이해하고 인식한 인간이 옳아서 혹은 틀려서 - 옳은지 그른지 나도 모르는데 - 가 아니라 자기가 그린 인간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거만 떠는 사람이다.
그러면, 뭐 때문일까. 그가 그린 인간들의 찌질한 속성들을 볼 때마다 내 안의 찌질함을 들킨 듯해 뜨끔해져서? 딱히 그것 때문도 아닌 것 같다. 인간은 원래 찌질한 거니까, 찌질하기 때문에 위대한 거니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도 결론을 못 내렸는데, '하하하'를 보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나는 홍상수 감독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화를 잘 내는 게 싫었던 거였다. 초기의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갑작스럽게, 맥락없이 벌컥 화를 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사실 많이는 안 나오는데, 유난히 내 기억에 남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화를 내는 목소리를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내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멀리서 바람 따라 날아온 목소리에도 흠칫할 정도로. 홍상수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화를 내곤 한다. 화를 내는 사람은 어느 만큼은 가엾다. 대부분 화는 세상이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그 스스로 자신이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꼈을 때 터져나오는 거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이상 날 이해시키거나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현처럼도 들린다. 화를 내거나 화가 난 사람과는 더 이야기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화 내는 목소리를 특별히 힘들어하는 것은 그 때문이겠지. 게다가 화라는 건, 대부분 갑작스럽고 완전히 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는 듯하다.(때로는 내가 내는 화조차 그렇다, 그래서 화가 무섭다)
화 잘 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정점은 첫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화를 내다 못해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마니까. 그런데, '하하하'는 완전히 다르다. 그 사이 감독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홍상수 감독이 데뷔하기 전, 친구 하나가 데뷔를 준비하던 홍감독 영화사 기획실에서 일했다.(그 영화사는 영화제작사라기보다 영화수입사였기 때문에 홍감독 영화는 매우 예외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인연으로 강남역 앞 포장마차에서 홍감독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원작 - 이라기보다 영감을 제공해준 실마리 같은 것,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으니까 - 이었던 구효서 샘의 작품의 원작 판권 계약을 한 날이라고 했다. 북리뷰지에서 일해서 소설가라든가, 출판사라든가와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는 걸 안 홍감독은 내게 정말 알 수 없다는 듯,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 "구효서라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요?" 하고 진지하게 물었던 게 생각난다. 판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아주 시원시원한 사람인 듯했는데, 그날 만나고 온 작가 구효서는 아주 쪼잔하고(?) 소심한 사람인 거 같다면서 말이다. 어쩌면 그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였던 거 아닌가 싶다. "나와 관계를 맺게 된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당신에 대해 알 수 있는가", "당신은 나에 대해 알 수 있는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좀 불편하다 싶었으면서도 빼놓지 않고 보았던 건 이 질문들에 어떤 해답을 찾을지 궁금했기 때문일 거다.
'하하하'는 홍상수 감독의 다른 영화와 그 틀이 크게 다르지 않다. 캐나다 행을 결심한 영화감독 조문경(김상경 분)은 떠나기 전 친한 선배(유준상 분)를 만난다. 우연찮게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통영에 다녀온 걸 알고 두 사람은 그 여행 이야기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신다. 여행 이야기 속에는 몇 커플이 등장하고 그들의 인연은 마주칠 듯 마주칠 듯 하면서 서로 비껴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먼저 이야기한 것처럼 화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시인으로 분한 김강우와 관광안내원 왕상옥(문소리 분)이 좀 화를 내긴 하지만 전처럼 불편할 정도로 세진 않다. 그렇다면 이제, 홍감독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나,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은 걸까. 길을 찾은 거 같긴 하다. 하지만 그게 애초에 찾게 되리라 기대했던 그런 답은 아닌 거 같다. 왜 그런가. 이 영화는 회고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은 흑백이며 정지화면으로, 오로지 말소리만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이 목소리는 오로지 과거 이야기만 하고 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모두 과거이고 기억으로 복원된 사람과 사건들이다. 이 영화 속에서 오로지 과거만이 색채를 갖고 살아 움직인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억으로 복원한 사건과 사람들은 과연 그 사건이고 그 사람들일까. 화를 내지 않는 건 편해졌지만 그게 해피엔딩은 아닌 거로구나 싶어졌다. 이건 포기 비슷한 것일 테니까.
현재는 흑백이고, 정지되어 있다. 오로지 목소리만이 살아있지만 그건 과거, 기억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는 타인에게 이해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를 포기한 홍감독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홍감독 영화들 가운데 저 장면 참 예쁘다, 싶은 것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참 많이 눈에 띈다. 이것도 그 한 장면.
'하하하'의 대사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두 가지다. "나는 좋은 것만 본다"는 것과 "네 눈으로 보고 네 머리로 생각하라는 것".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홍감독이 다다른 결론은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세상과 사람에게 좋은 것만 보겠다는 것, 내 눈으로 보고 생각한 것만을 믿겠다는 것.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한 척하지 않겠다는 것. 비교적 화를 안 내는 이 영화에서도 살짝 화내는 사람이 등장하는데,왕상옥(문소리 분)과 시인으로 나온 김강우다. 그런데, 이 정도는 괜찮다 싶다. 내가 이해한 것으로 복원한 과거에도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어떤 부분을 남겨둔 것이 너그럽게 느껴진달까. 그런 것조차 없었다면 불쾌했을 거 같다. 그리고 홍감독이 이른 것으로 보이는 이 결론도 마음에 든다. 나 자신조차도, 나에게 이해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 그러니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냐는 것 말이다. 이건 넌 날 몰라, 그리고 나도 널 몰라 같은 거 하고는 다르다.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보겠다고 해봤자 그건 오해일 따름이다. 그러니 포기가 차라리 낫다.(홍감독 영화 속에서 집과 가족이 잘 등장하지 않는 건 아마 그들은 포기하기가 참 어려운 사람들이어서일까) 이 포기가 참 마음에 든다. 이제 홍상수 감독 영화를 편안한 마음으로 심지어 깔깔 웃으며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 같다. 이게 얼마만인가. 그가 1996년에 데뷔했으니, 꼭 15년만이다. 15년만에 찾아온 화해, 혹은 이해.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서 더 좋았는데, 문소리의 경상도 사투리는 중독성마저 있다. 여력이 된다면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을 꼼꼼히 뜯어보고 싶다. 홍감독 다음 영화가 이렇게 기다려지기는 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