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을 위한 전체주의 시대'
"경제성장이라는 것은 본래 경제적 불평등, 즉 빈부격차라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또한 동시에 경제성장은 기왕의 경제적 불평등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대전제는 경제적 자립과 독립성을 가진 시민들의 존재, 즉 경제적 민주주의라는 지초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p. 137
"... 좀 더 깊이 생각해볼 때 농사의 문제는 그러한 식량의 안정적 확보문제라는 차원을 떠나서도 진실로 인간다운 삶과 문화의 유지에 중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농(農)의 세계는 인간으로 하여금 늘 자신보다도 더 큰 생존의 근원과 테두리를 인식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이 지상에서 살 수 있게 하는 터전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모든 건강한 지적, 윤리적, 심미적 사고와 행동의 뿌리를 이루는 종교적 감수성과 덕성이 함양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p. 170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장기적인 전망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찰나적 충동과 욕망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체로 미래 세대의 운명에는 아랑곳없이 지금 여기에서의 나 자신의 개인적 욕망의 즉각적인 충족에 골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무책임이 일상화된 것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밤낮없이 듣고 말하는 것은 경제성장과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에 국한되어 있고, 우리 각자의 생활은 온통 좀 더 많은 소득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배타적인 경쟁에 바쳐져있다. 그리하여 돈이 되는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선이 되고, 그 반대는 무조건 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 속에서, 인간다운 삶의 근본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환대의 정신은 갈수록 퇴화되고 있다." p. 173
땅의 옹호, 김종철 지음
이 책을 읽는 동안, 엄마 고향 선배라는 분이 놀러오셔서 모셔다 드릴 일이 있었다. 울 엄마도 그렇지만 그 분 역시 전라도 저 아래에서 토종 농민으로 사셨던 분이다. 그런데, 인천에서 시흥까지 한 30분을 가는 동안 내내 말씀하신 내용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도, 세상살이의 팍팍함도, 그런 가운데서도 심난함을 잊게 하는 사소한 행복이나 기쁨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 돈 얘기 뿐이었다. 2억 얼마를 주고 경매로 산 안산의 다세대 주택에서 한 달에 2백만원의 월세가 나오고, 자기 아들이 그때 지금 상가를 안 사고 아파트를 샀더라면 몇 억이 남았을 것이며, 사돈댁은 평촌에 사둔 아파트 값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래도 평촌이라 6억 정도는 하는 모양이고... 나에게 한 말도 아니었건만 그냥 귀에 들려오는 것만으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이 어른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 말들이 특별히 악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갑자기 인간이라는 사실이 초라해졌다. 삶이라는 게, 그렇게 알량한 것이었던가.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게, 그런 것인가. 문제는 근대성이라고 한다. 지금의 체제를 배태한 근대성, 우리가 선이라고 믿었던 그것. 비극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란다. 근대성이란 늘 상징으로든, 실제로든 식민지를 전제할 수밖에 없고, 세계화도, 한 사회의 빈부격차도 모두 그것이 변형된 형태일 뿐이란다. 그러므로, 그 근대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는 '다른 삶'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이 깨끗해지긴 했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계속 괴롭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열중"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지구와 인류를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고, 그냥 통장 속에 넣어둔 돈은 자본주의의 씨앗이 되어 이 체제를 더 단단하게 굴러가게 만든다.
유일한 답은 하워드 진이 했다는 이 말 뿐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실천적 행동이란 과연 무엇이냐? 그게 문제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방식일지라도 실천적 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비타협적으로, 인간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한다고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야말로 찬란한 승리일 것이다." p. 138 위 책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