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미식예찬*야구감독

양화 2008. 8. 23. 21:51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김석중 옮김/서커스/각 468*344면/각 12000*9500원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나와 비슷한 부류,라는 강력한 끌림이 느껴지는 이가 있습니다. 거의 몇 8년 여만에 직장생활을 새로 시작하면서 들어온 직장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친구는 제가 직장에 들어온지 석달만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오래 친해질 기회가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또 만날 사람은 언젠가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 친구가 어느 여름날, 뜬금없이 추천할 만한 책 없냐고 문자를 보내왔길래 연암의 책을 비롯해 몇 권을 선물로 보내고 잊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책선물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게 바로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미식예찬'과 야구감독'. 이 책들 이야기를 간간히 들어오던 터지만 소설을 사는 건 어쩐지 여러 번 생각하게 되는 일이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선물해와 정말 기뻤지요.

 

책을 다 읽고서 든 생각은 이런 게 어린 것들은 모르는 프로의 세계라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책 모두 일본의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인데, 미식예찬은 일본 최고의 미식가이자 일본 최대의 요리학교 쓰지 조리사 학교의 창립자인 쓰지 시즈오이고, 야구 감독은 자이언츠의 명유격수였다가 나중에 야쿠르트 팀의 감독을 지냈던 히로오카 타쓰로입니다. 이들은 불모지에서 꽃을 피웠든, 꼴찌를 일등으로 만들었든 하여간 어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성공을 하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그들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성공이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기에 책이 끝날 무렵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지요.

 

요리의 기본과 원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절대 미각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이지요. 미식예찬의 쓰지는 절대 미각을 단련하기 위해 지금 돈으로 치면 수 천 만원을 훌쩍 넘는 장인의 지원금을 들고 말 그대로 미각여행을 떠납니다. 미국에서는 요리 이론가들을 만나고, 프랑스로 건너가서는 미슐랭지에 별 세 개 이상을 받은 레스토랑을 돌아다닙니다. 순전히 먹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가는 곳마다 쓰지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기꺼이 친구가 되게 만듭니다. 그는 원서를 통해 요리 이론을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원칙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프랑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스를 만드는 강의를 하는 장면을 보면 혀가 내둘러집니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조리법.

 

그러면 이번엔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과 기본은 무엇일까요? 점수를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점수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실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 철저히 방어하는 것. 비싼 몸값을 준 외국 선수 4번 타자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으면서 히로오카는 이렇게 말합니다. "녀석의 득점을 생각해 봐. 고작 51점이야. 홈런이 37개니까 발로 얻은 득점은 14점이지. 안타를 쳐도 2루에서 들어오지를 못하는 거지. 1, 3루라고 쳐. 뒤이어 또 안타가 나오면 문제없지. 그런데, 외야 플라이. 녀석이 외야 플라이로 3루에서 홈으로 돌어온 걸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 번트로 진루 시키는 것도 불가능. 어떤 번트를 대도 녀석이 주자로 있는 한 아무 의미가 없어." 말은 더 계속됩니다.

 

"수비는 더 지독하지. 예를 들어 번트 쉬프트로 수비 위치가 바뀌었을 때, 약간 강한 번트가 굴러왔다고 쳐. 옆에서 잽싸게 달려와 제대로 2루에서 주자를 아웃 시키면 투수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그런데 쿵쾅쿵쾅 나와서는, 공을 주워 손쉽게 1루에 던질 때의 마이너스! 다른 야수들한테 주는 여향을 생각해봐. 그런 둔한 야구를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 녀석이 1루에 있는 한 그런 야구는 바뀔 수 없어." "하지만 그가 올린 100타점은 어떻게 메꾸려고?" "녀석이 혼자서 적한테 내준 점수도 그 정도는 돼." 그가 말하는 야구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치고 막고 달리기" 그 셋을 고르게 할 줄 알아야 하며 승부근성은 기본이지요. 힘을 다한 후에 얻는 승리의 기쁨을 학습하는 것 말입니다.

 

만년 꼴찌를 달리던 팀이 수년 동안 최고 위치를 지켜온 1위팀을 꺾는 장면이나 기본을 충실히 닦기보다 외관에 더 집중하며 이익단체의 정치에만 몰두하던 다른 조리사 학교의 기선을 제압하는 장면은 정말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그래, 나도 원칙에 따라서 노력하기만 하면 언젠가 뭐든 이룰 수 있어, 하는 단순하지만 깊은 결의를 갖게 하지요. 그들이 그런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지, 물론 그게 핵심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듯 보이는 그 시간 동안 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말이지요. 야구나 프랑스 요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책을 읽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참 놀랍습니다. 승부를 앞둔 인간의 심리와 그 심리적 복잡함이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린 것도 탁월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요즘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나날이 걱정인 저 윗분과 이 책의 탁월한 지도자들이 오버랩되면서 역시, 지도자가 훌륭해야... 하는 개탄이 나옵니다. 픽션이지만 얼마나 발로 취재를 다녔을 것이며 - 그 경기 내용하며, 프랑스 레스토랑의 정취, 복잡 다단한 개인사 ... - 자료들을 읽었을지 노고가 느껴지는 것도 이 소설들의 진심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랄까요? 군더더기없이 단순하면서 정확한 문장은 우아한 멋까지 느껴지고요.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사람들 간의 태도나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 흔들림없는 믿음과 지지로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확실히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단순한 소설이지요, 확실히. 그러나 힘있는 소설입니다. 그 친구는 이제 어느날 오후, 제게 '야구감독'과 '미식예찬'을 선물해주었던 친구로 오래 기억되겠지요? 책은 참 멋진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