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순간
"그 중 한 가지 이유에요. 나머지 이유는, 제 생각에 나머지 이유는, 일단 말해 버리면 모험이 끝나버릴 게 확실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할 만큼 했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는 모험을 끝내고 싶지 않아요."
"모험은 끝났어. 모든 것은 끝나게 마련이고, 어떤 것도 할 만큼 했다고 느껴지지 않는 법이지. 네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건 휴가를 보내는 것과 똑같단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즐겁게 지냈다고 자랑하려고 휴가 기간 내내 사진을 찍지. 느긋하게 쉬면서 휴가를 자기 안에 받아들이고 그걸 지닌 채 돌아갈 생각들은 하지 않고 말야." p. 176
"... 그러니까 이 비밀을 철석같이 지킬 거야. 클로디아는 다른 이류로 비밀을 지킬 테고. 나랑 똑같은 이유로 말이야."
제이미가 물었다.
"그게 뭔데요?"
"그건 단지 비밀이기 때문이야. 클로디아가 딴 사람이 되어서 그리니치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거지."
클로디아는 제이미를 바라보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한 것이다.
"비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클로디아가 원했던 일이야. 천사상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클로디아를 설레게 하고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지. 클로디아는 모험을 바라지 않아. 모험을 하기에는 목욕과 편안한 느낌을 너무 좋아하거든. 클로디아에게 필요한 모험은 바로 비밀이야. 비밀은 안전하면서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비밀이 존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말야. 사실 내가 너희들에게서 듣고 싶은 건 너희들의 비밀이 아니야. 구체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지. 나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물론 온갖 것들을 수집하거든." p. 190
"... 나는 이 일을 내 스스로 연구한 것에 만족한단다. 새로운 것을 배울 마음이 없어."
클로디아가 말했다.
"하지만 프랭크와일러 부인,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해요. 저희는 미술관에서 지낼 때도 그렇게 한 걸요."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물론 너희는 지금도 배워야 하고, 앞으로도 훨씬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거야. 하지만 너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들이 스스로 무르익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도 세상일에 훤해지는 날도 올 게다. 그러면 그냥 느껴질 거야. 만약 느낄 만한 여유가 없다면, 그건 사실들을 그냥 쌓기만 했다는 거야. 그렇게 쌓인 사실들은 안에서 요란하게 들썩이며 까불대겠지. 사실을 쌓아두기만 한다면 그런 소음은 낼 수 있지만 뭔가를 진정으로 느낄 수는 없지. 그것은 다 쭉정이들이니까." p. 194-195
클로디아의 비밀, 코닉스버그 글, 그림.
아이들을 붙잡고 읽어주다 내가 감동먹었다. 비밀을 간직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니... 이 모티브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된다.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가 한 예가 된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게 되는 그 순간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 비밀의 봉인이 해제되는 날, 그들은 늙기 시작한다. (동호 석호는 다 딴짓만 하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