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일기

출근 첫날

양화 2008. 3. 4. 11:35

1.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보고드리자면 나이 서른 아홉, 조직 떠난지 10여 년만에 조직으로 복귀했습니다. 맨날 우리 책 얘기할 텐데, 숨겨봤자, 내숭이 될 거고... '푸른숲'이라는 출판사입니다.  어찌어찌하다 이렇게 되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가보자 마음 먹었습니다. 경력 하나 없는 내게 기회를 준 회사도, 이걸 덥석 받아든 나도 용기를 내긴 마찬가지. 흐르는 대로 살자는 게 내 인생 모토지만 이게 맞게 흐르는 걸까, 눅눅한 의구심도 한 켠에는 찰싹 달라붙어 쉬 떨어지지 않습니다.

 

2. 출근 첫날,

3월을 맞아 원래 있던 직원들이 대거 그만두는 바람에 나는 지금 나홀로 팀장. 같이 머리를 맞댈 팀원도 없고, 살벌하게 칸막이된 저 칸 너머의 직원들도 아직은 낯섭니다. 커피는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뽑아 먹고(두 번 뽑아 먹으니, 이제 익숙해졌어요), 워낙 혼자서도 잘 노는 체질이라 혼자서 놀았습니다.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 컵이랑 칫솔 등 - 사야할 것도 있었는데, 낯 가리는 저, 물어보지도 못하고 한 발자국도 밖에 못 나가보고 퇴근했습니다.

 

3. 일 이야기

들어온 첫날부터 신간이 두 권이나 나와 다른 팀원들이 모두 바쁩니다. 박범신의 오랜만의 신작 '촐라체'가 나왔는데, 처음엔 책을 보고 무슨 서체를 가리키는 말인가 보다 했습니다. -_- 알고 보니, 히말라야 봉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 그리고 곧 '블랙홀 이야기'를 받아들었습니다. 제가 기획하고, 저자랑 이야기하고, 최고의 디자이너들의 협력을 받아, 인쇄소와 제본소를 거친 첫 책을 받아드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더군요.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 또한!!

 

4. 첫 일,

나홀로 팀장이다 보니, 부사장님과 이사님, 사장님의 지휘를 직접 받고 있는데, 세 가지 아이템을 한꺼번에 전해 듣고 기획안을 만드느라 머리에 쥐가 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 머릿속과 마음속으로 좀 가볍게 해야겠다, 나는 확실히 칙칙하구나 하는 깨달음.. (두껍고 글씨 많은 책을 좋아하면 안된다고!!) 근데, 이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 내 취향은 아방가르~드라며!! 이런 칙칙함이 아방가르드냐!! 라고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 심정..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