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갔다

행복 - 배우의 힘

양화 2007. 11. 18. 00:20

* 자신을 경멸할 때조차도 진심을 담을 수 있는 배우, 황정민 *

 

예전에 내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좋아한다고 하면, 반응은 두 가지였다. 그 사람이 누군데?, 아우, 변태..황정민의 초기작들은 지방 밤무대 밴드의 좀스런 드러머,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게이 노숙자, 소심한 친일파의 아들, 바람 피우는 이중인격자 변호사 등 캐릭터 자체가 매력(세속적인 의미에서 ^^)을 가졌다고 보긴 어려웠다. 아우, 변태! 라는 말 속에는 배우는 모르겠고, 어떻게 그런 캐릭터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뜻이 다분히 담겨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사라졌다.(사람마다 호불호가 다르니 분명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게다) 오히려 '황정민'이 선택한 영화라는 게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되기까지 해서, 원작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을 들은 '검은 집'이 영화관에서 꽤 오랫동안 선전한 것은 순전히 주연 배우 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멜로라는 장르 하나만으로 세계의 외면을 더듬고, 인간의 깊이를 재던 허진호 감독이 황정민과 임수정 카드를 골랐을 때, 그 남자 배역이 여자들에게 원성깨나 듣게 생긴 캐릭터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에그머니나 싶었다.

 

황정민의 연기는 우리가 통념상으로는 도저히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정민은 머잖아 죽을 여자를 농락하고 등친 후에 걷어차기까지 하는 천하의 호로자식 - 영화 속에서 임수정이 그런다. "개~새끼, 니가 사람이니?" - 을 연기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다. 아니, 나만 동정했나.. ^^ 허진호 감독은 사랑이 시작되고 전개되는 순간보다 그 사랑이 어떤 식으로든 변질되는 순간에 삶의 비밀이 숨겨져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한국영화사에 남을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그가 평생 들고 있는 화두인 게다. 왜 변하긴.. 사람이니까 변하지. 그 사람이 나쁘거나 비열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서. 술과 말초적인 즐거움으로 살던 남자 영수는 방탕한 생활의 전리품으로 간경변이라는 병을 얻는다. 애인과도 헤어지고 망한 클럽은 맘 좋은 친구에게 넘기고 살아보겠다고 '쪽팔리게' 산골마을에 있는 요양원에 들어간다.

 

요양원 가는 길에 만난 여자 은희는 회복할 수 없는 폐병에 걸린 요양원 붙박이 처녀다. 사는 재미라고 믿었던 것들을 모두 잃은 영수에게 남은 건 두려움 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사는 재미라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아 보이는 은희에게서 그는 평온을 본다. 둘은 사랑하고 믿고 기댄다. 같이 있으니 너무 좋다, 뽀뽀를 하고 있는데도 뽀뽀가 하고 싶다, 너 없인 못 살 거 같다로 이어지던 사랑은 영수의 병세가  호전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달라서 신기하고 좋았던 것들이 달라서 다 싫고 지겨운 것으로 바뀌고, 같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줄어든다. 모처럼 여행을 떠난 은희와 영수. 영수는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쌓여있던 것들을 털어내듯이 소리 지르며 놀이기구를 타고, 그마저도 함께 탈 수 없는 은희는 영수를 바라보며 깔깔대고 웃다가 그 웃음이 눈물로 변한 것을 깨닫고 어떤 슬픈 예감에 사로잡힌다.

 

가수 이승환도 진작에 얘기했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주 사랑할 때조차도 "사랑한다. 사랑하니?"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보다 그저 "그런 게 있긴 있구나"하던 영수는 결국 은희 곁을 떠난다. 단호하게 "나 행복하고 싶으니 떠나달라"던 은희가 숨죽여 통곡하는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아니 들었기에 더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이 영화에 대고 영원한 사랑이니, 배신이니 하는 것들을 떠올려서는 안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사람마다 다른 사랑이 있을 뿐인 거다. 영수는 그저 은희스러운 사랑을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은희 역시 영수 같은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살면서 겪은 것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무언가를 남긴다. 그래서 예전처럼은 되지 않는다.

 

건강한 남자가 되어 도시로 돌아간 영수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영수의 삶은 더 가벼워지고 더 피폐해졌고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넌 이렇게 사는 게 재밌냐?" 그는 예전 애인에게 그렇게 묻는다.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문득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을 때, 앙상한 가슴을 웅크리고 피를 토할 때, 이마엔 함부로 산 흔적처럼 상처를 달고 병원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멜로드라마의 초라한 남주인공 콘테스트에 나간다면 단연 1위감일 것이다), 은희의 마지막 병상에 앉아 은희의 손을 잡을 때, 휘적휘적 옛 요양원으로 찾아올 때, 그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건 후회도, 자기 연민도 아니었다. 그게 영수에게 남은 사랑의 흔적이었다.

 

영수는 죽을 때 곁에 있어달라던 은희와의 약속을 지켰다. 그것만으로도, 만약 사랑이 기브 앤 테이크이고, 그래서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하는 거라면, 충분히 되돌려줬다고 생각한다. 자기 방식대로 사랑했으며, 그것이 한때였을 망정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 받았고, 이승을 떠날 때조차 자기 사랑의 흔적을 긍정적으로 마음에 담을 수 있었을 은희가 오히려 훨씬 더 많이 받은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소설가가 말했듯, 사랑은 '나의 너'가 아니라 '너의 너'를 사랑해야 하고 그러려면 조금 덜 사랑해야 하는 거다. 사람마다 다르게 사랑한다는 것, 영수의 사랑에도, 세상이 다 지탄하는 영수식 사랑도 진실이라는 걸 설득한 것은 그 역을 맡은 황정민의 힘이었다. - (같은 감독의 '외출'을 비교해보면, 배우의 힘이 영화를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 아마도 알 것이다)

 

그레이엄 그린이라는 소설가는 그의 책 "권력과 영광"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남자나 여자를 꼼꼼히 떠올리다 보면 언제나 연민이 느껴졌다.... 눈가의 주름, 입매, 머리가 자라난 모습을 볼 때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는 건 내면에 담긴 신상(神像)의 힘이었다. 미움은 상상력의 실패였다"고. 황정민은 어떤 배역 속에서든, 그 인물만의 "눈가의 주름, 입매, 머리가 자라난 모습"을 그 사람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자신을 경멸할 때조차도 진심을 담고, 그 진심이 인물을 이해하게 만든다. 황정민은 어떤 천하의 죽일 놈 역할을 맡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문학이 인간을 상상할 때는 늘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