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셜록 홈즈 험담? 숭배!

양화 2007. 5. 22. 17:00

"정말 차이가 나는군. 셜록 홈즈라면 벌써 해결을 끝내고, 왓슨에게 다음 사건 설명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닐까. 해결은 설사 무리라도, 조금 더 활동적인 면을 보였을 거야. 너처럼 하루 종일 소파에서 뒹굴거리지는 않았을 걸."

"홈즈?"

미타라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뒤이어 그가 한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다. 아마 장난감 총에 맞은 표정을 지었음에 틀림없다.

"아아, 허풍쟁이에 교양 없고, 코카인 중독, 망상벽, 현실과 환상의 구별을 못하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 영국인!"

.....

"... 또 뭐 없나... 아니아니 또 있어. 으음, 아, 맞다. 홈즈는 변장의 명인이었지! 백발 가발에 눈썹을 붙인 후 양산을 쓰고 할머니로 변장해서 자주 길거리를 걸어다녔지? 홈즈의 키가 얼마인지 알아? 6피트가 넘어. 1미터 90센티미터에 가까운 할머니가 있는데, 남자가 변장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이런 할머니가 실제로 있다면 괴물이지. 아마 런던 사람들은, 아, 홈즈 씨가 가는구나, 라고 말했을 거야.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왓슨씨는 알아채지 못해. 그러니까 내 생각은, 음, 홈즈 흉내를 내보자면, 홈즈라는 사람은 코카인을 너무 한 결과 뇌에 이상이 와서, 발작이 일어나면 미친 듯이 날뛰는 버릇이 있었던 게 아닐까. 발작 당시의 일은 일부러 감추고 있지만. 홈즈가 복싱을 했다면 그 체급에 필적할 자가 없을 거라고 왓슨이 자주 썼던 그 말은 분명 비꼬는 거야. 틀림없이 발작을 일으킨 홈즈에게 왓슨 박사는 몇 번이나 넉 아웃을 당했을 걸.

 그래도 홈즈 이야기를 써서 밥벌이를 하니까 인연을 끊을 수는 없겠지. 그래서 겁이 나면서도 함께 살고 있었을 거야. 홈즈의 심시가 상하지 않도록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었겠지. 설령 누가 봐도 뻔한 변장을 한 홈즈 씨가 밖에서 돌아와도 눈치 못 챈 척하고. 어쩌면 하숙집 여주인이 홈즈 씨가 또 가발을 쓰고 돌아왔습니다, 라며 매번 왓슨에게 미리 알려줬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모르는 척, 홈즈가 와하하 나야, 하고 말하기를 기다렸다가 앗, 깜짝 놀랐어,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준 게 아닐까. 모두 생계를 위한 거라고 깨끗이 체념하고 말이야. 어라? 이시오카, 왜 그래"

".... 잘도... 그런 천벌 받을 말을 계속 쏟아내는군... 믿을 수 없어. 머지않아 네 입이 퉁퉁 부을 거야."

......

"... 그럼 넌 홈즈밖에 모르는 거야?! 허어! 그런데 잘도 헐뜯는군.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참나! 결국 네 말은 무능한 홈즈에게는 전혀 감동할 수 없다는 거지?"

"누가 그렇대? 완전무결한 컴퓨터에 우리가 무슨 볼일이 있어? 내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야. 기계를 흉내내는 부분이 아니야. 그런 의미에서는 그 사람만큼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은 없어.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인간이야. 나는 그 선생이 정말 좋아."   p. 271-275

 

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음

 

핫핫! 숭배를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이 글을 읽고 동감하는 사람은 아마도 셜록 홈즈의 팬일 거다. 베스트셀러 '살인의 해석'을 비롯해서 살인사건이 나오는 소설을 연달아 몇 개 읽었는데, 이렇게 유쾌해보기는 처음. 프로이트 이론과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찬조 출연하는 '살인의 해석'은 술술 잘 읽히기는 한데, 너무 헐리우드 영화 같아서 읽고 난 후 끝.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프로이트 시대의 뉴욕을 실감나게 복원한 것, 실제 인물과 사건을 정교하게 직조한 것, 두 가지에 점수를 주고 싶다.

 

'점성술 살인사건' 자체도 홈즈 같은 괴짜 인물 하나와 왓슨 역할을 하는 친구가 나오고, 사건을 죽 늘어놓은 후, 조용히 한순간에 해결하고 뒤에 되짚어가며 설명하는 과정이 홈즈 구조 그대로다. 살인사건이 나오는 책들을 한참 읽다 보니, 이것도 결국 '해석'의 문제이지 싶다. 살인사건은 거의 비슷한 유형과 비슷한 동기로 발생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분석해 들어가느냐에 따라 책의 재미가 달라진다. 홈즈 소설이라는 전형을 오랜만에 보니, 참으로 신선하고 재밌다. 최고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