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무서워라

양화 2006. 12. 22. 15:29

부모들은 자신이 자녀 성격 형성에 중대한 공헌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저술에 따르면, 이러한 믿음은 '문화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p. 204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p. 231

 

괴짜경제학, 스티븐 레빗, 스티븐 더브너 지음

 

출간되자마자 화제를 모았던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하버드 출신의 촉망받는 경제학자, 하나로 통합된 주제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세상을 읽어내는 경제학자,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 보이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파헤치고 독특한 관점으로는 보는 이. 그래서 오해를 받거나 지나친 관심을 받는 사람. 윤리학이 이상세계를 반영한다면, 경제학은 현실세계를 반영한다는 명쾌한 한 마디가 어쩌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하겠다. 

 

경제학의 근본인 인센티브가 시험 부정에 관여한 교사와 승부 조작을 하는 스모선수에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보의 독점이 KKK단과 부동산 중개업자를 어떻게 같게 만드는지, 실체는 존재하지도 않는 발명된 통념이 만들어낸 각종 사회현상들, 낙태합법화와 범죄율 감소의 상관관계. 흥미진진한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완벽한 부모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장이 눈길을 끌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위에 인용한 말은 이 책의 저자가 직접 주장한 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온 것이다.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 성격 형성에 중대한 공헌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치하지만, 그럼 누가 더 큰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에서는 서로 다른 답을 갖고 있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친구가 더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것이었고, 스티븐 레빗은 그 밑에 인용한 문구로 답을 대신했다. 그걸 읽는 순간 오싹했다. 아마도 육아의 정답을 찾아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거나 안심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답게 이 책은 굉장히 많은 통계수치들을 이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인성을 수치화할 수 없는 관계로 이 책은 아이들의 성적을 중심으로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성적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추적했다. 그런데, 답은 바로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란다. 자, 다음의 내용 가운데 아이들의 성적과 강한 상관관계(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가 있는 것을 골라 보라.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다.

가족구성이 온전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

최근에 주변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가 30세 이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가 적었다.

아이가 헤드스타트(영세민 자녀를 위한 조기교육 프로그램)에 다녔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쓴다.

부모가 아이를 자주 박물관에 데려간다.

입양된 아이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한다.

부모가 PTA활동을 한다.

아이가 TV를 많이 본다.

집에 책이 많다.

부모가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다.

엄마가 첫아이를 출산한 나이가 30세 이상이었다.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가 적었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쓴다.

입양된 아이다.(-)

부모가 PTA활동을 한다.

집에 책이 많다.

 

자신의 짐작과 이 목록이 많이 일치하는지. 거칠게 말하면 이 요소들은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해주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기 보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는 것들이다. 부모가 되고 나서 나는 늘 두려웠다. 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나의 잘못으로 아이들을 그르치지나 않을까,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늘 살얼음판이었다. - 이건 그래서 내가 엄청 잘 했다는 게 아니라 맨날 그런 두려움 때문에 시달렸다는 뜻이다 -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의 결론은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긴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 아이들이 그럼 나 같아진다는 것인가. 오, 오, 무서워라.

 

하지만 어디 인간이 그렇게 단순한가. 이 책 중간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백인 중산층 아이가 있었다. 시카고 외곽지역에 살던 이 아이의 아버지는 남부럽지 않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고, 어머니는 현재는 전업주부지만 나중에 대학에서 공부해 교육학 학사 학위를 받는다.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고, 학교 성적도 좋다. 사랑스러운 동생 역시 아주 머리가 좋다. 또 다른 흑인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아이를 버렸고 아버지는 좋은 실적을 내는 판매원이었지만 술을 많이 마셨고, 늘 아이를 때렸고, 동거하던 여자를 때렸다. 아이는 학교에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고, 마약을 팔고 빈집을 털었고 총을 가지고 다녔다. 12살 때 아버지가 강간죄로 감옥에 간 후 그 애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만 했다.

 

두 아이 가운데 누가 더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까. 두 아이의 운명은 어느 정도까지 부모의 탓일까. 두 아이가 과연 어떻게 성장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백인 아이는 하버드에 갔다. 그 아이의 이름은 테드 카진스키, 일명 유나바머로 17년 동안 폭탄 테러로 온 미국을 공포에 떨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 흑인 아이는 롤랜드 G. 프라이어 주니어. 이제 스물 일곱의 그 아이는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가 되어 '흑인들의 낮은 성취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