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서평

장석조네 사람들

양화 2006. 4. 13. 03:16

 

김소진 지음/280쪽/문학동네/2002

기차길 옆 일자집, 아홉 세대에 화장실은 단 두 개. 아침마다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악다구니 사이로 이따금 기차가 지나갑니다. 읽는 동안은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 푸세식 화장실을 쓰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까짓 밀가루 배급에 이렇게 목숨 거는 사람들도 있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 얘기가 이런 시대에 어떻게 공감을 얻겠어,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으이구, 지지리 궁상, 같으니라구.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거기서 여기, 무엇이 더 얼마나 나아졌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식의 흔한 수사로는 스스로 설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체격이 우람했지만 마음 착했던 육손이 형은 레슬링에 나갔고,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잡는 백골단이 되었고 나중엔 행려병자가 되어 비극적으로 죽었답니다. 폐병쟁이 아저씨는 미움 받는 오리를 보신하려고 샀다가 한강에 풀어주네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한강에서 맘대로 노닐며 살다 죽으라고요. 와, 안됐십니꺼?”...“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벌써 몇 벌 죽임을 시키는 게요. 도무지....사람들끼리 맘 상허게 허구 말이유.”오리도 불쌍했지만 그는 사람들끼리 맘 상하는 것도 싫었던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장석조네 사람들 속에 옹기종기 살고 있었던 거지요. 그것은 마음 한 켠 잊고 있었던 숱한 사람들을 일깨웠습니다.

지하철 계단에 엎드려 구걸하던 곱은 손의 할머니, 버스 정류장 앞 손님 없는 분식집을 근심 어린 얼굴로 지키고 있던 중년 부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윗옷 단추도 제대로 맞춰 끼우지 못한 채 어디론가 뛰어가던 젊은 남자. 《장석조네 사람들》은 그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들 모두 대수롭진 않지만 자기를 밝힐 만큼의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노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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