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신은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2. 진보이고 싶은데, 행동은 미처 못 따라가는 사람
3. 진보라고 믿고 있는데, 남들이 보면 보수이기 짝이 없는 사람
4. 진보이고 싶지도 않고, 오리저널 보수란 사실에 뿌듯해 하는 사람
... 진보이고 싶은데 행동은 미처 못 따라가는 이가 최악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펜을 굴리고 혀를 내두를수록
그의 평소 실제 행동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고 그런 점이 위선으로 보였다.
그의 글조차 신뢰가 가지 않게 되고 읽으면서 콧방귀만 뀌게 되었다.
도대체의 다락방, 장미영 지음, p. 71
책을 사놓은 지는 1년이 넘었는데, 도무지 읽어지지가 않았다.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실험성이(?) 강한 책이라 책 만드는 데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샀는데, 도무지 읽히지가 않았다. 왜냐, 한마디로 정신사납다.
결대로 넘어가지 않고 뚝 꺾여버리는 두꺼운 판지형 표지, 칼라를 쓰면
분명 같은 색인데도 페이지마다 색이 다르게 나오는 본문 종이, 서체면 서체,
편집이면 편집 통일되어 있지 않은 면 구성. 전형적이고 격조있는
- 한마디로 심심한 - 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며칠전 손에 들었더니 인터넷에 올렸던 글들을 묶었다는 특성 때문인지
술술 읽힌다. 나도 이제 네티즌 취향? 하여간 일상에서 있었던 일, 사적인 일기,
웃음기와 눈물기가 배어있는 과거지사, 딴지일보에서 기자로 썼던 글, 그리고
짤막한 메모와 함께 붙어있는 사진들이 유머감각과 따뜻한 시선에 잘 섞여있었다.
지하철을 짧게 짧게 타고 집과 직장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뭐, 읽어도 손해는
안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저 구절이 눈에 띈 것은 나도 그런 사람 몇몇에게 실망했다는 기억이
샘솟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요즘 들어 하고 있는 생각이랑 맥락이 좀 비슷하다
싶어서다. 최근 존경받는 한 작가를 둘러싼 저작권 분쟁을 보면서,
정말 무서운 사람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공적인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게 부끄러운
짓인 줄도 알고, 그게 나쁜 짓이란 것도 어느 정도는 알고, 누가 비난하면 그걸 감수하기도
- 속까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하지만, 공적인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는 사람은 가끔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적인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말이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고, 자기 인간관계가 부서지면
자신이 희생했다고 믿고, 사람들이나 사회가 비난하면 예수도 자기 고장에서는
박해 받았다며 위로한다. 비슷한 말인데도 자기 말은 틀리지 않고, 다른 사람 말은
틀렸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게 자신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러는 게 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다.
'도대체'는 차악이 무엇인지 묻고, 그럼 최악은 뭐지, 라고 돌려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며 자기 삶을 돌아보는 것도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사실 이런 책을 보고 있으면 그 재기발랄한 유머감각이 부러워 죽겠다.
유머하고는 담쌓은 사람이라, 가령, 길을 못찾아 약속시간에 약속 장소에
못 도착해서는 "우리 근처 PC방 가서 화상 채팅할래요?" 한다든가,
만나놓고는 "방향치인데, 방향제를 먹어봐도 낫지를 않네요." 한다든가,
손바닥에 병뚜껑(난 옛날 별모양 소주병뚜껑을 생각했는데) 모양을 찍어놓고
"제 손금은 워낙 특이해서 다른 분들이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처음 온 술집 화장실 위치를 묻는 퀴즈를 내놓고 확인 삼아 다녀오겠다고 한다든가,
회계 전문가니 회계에 대해 물어보랬더니, "회개는 성당에서만 한다"고 한다든가,
도중에 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12시가 되면 택시가 호박으로 변하고, 구두가
벗겨져서요." 하는 그런 사소한 유머감각들 말이다. 썰렁하다구...? 흑흑..
이것도 안되는 난 뭐냐구~!!
케이스 상담식으로 풀어놓은 성희롱에 관한 딴지일보 기사는 참으로 유용한
성희롱 가이드 라인이었다고 생각한다.(심각) 뒤져보니, 웹사이트가 존재한다.
(http://www.dodaeche.com)
책에 정이 안 가신다면 한번쯤 문 열어보는 것도..
참, 뒤늦게 알았는데, 이 책은 시공사 만화사업본부에서 낸 책이다. 어쩐지...
어수선한 게 만화 같더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