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지음/권일영 옮김/575면/북스피어/2007
어떤 사람은 "전작주의"를 이야기합니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의 의도와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의도는 또한 글쓴이 내면 세계와 깊은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다. 즉 누군가의 글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그 작가의 전체적인 내면 세계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작품을 (...) 독립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작품을 쓴 작가의 내면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어느 한 부분으로 보고 전체-부분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악할 때 더욱 깊이있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 배경입니다.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가끔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은데, 한 사람이 태어나서 70 평생, 그것도 갓난 아기, 노인의 시기를 무시하고 하루 한 권씩 읽는다고 계산해도 읽을 수 있는 책은 2만 5천 권을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바심이 납니다. 그래서 한 작가의 작품들은 대개 한 가지 주제를 변주하는 경우가 많으니, 최신 작가라면 좀 기다렸다 검증된 후에 읽고 과거 작가라면 많은 전문가들이 공인한 걸작 단 한 편만 읽는 것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 많은 작가를 만나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인 '이유'를 이미 읽은 마당에 그의 작품을 또 읽는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그러나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덜컥 주문해버렸고 또 책을 펼치자마자 빠져들어 두 시간만에 뚝딱 해치워버렸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장기는 특히 장편에서 빛을 발하는데, 사방에 흩어져있는 인물들을 연관짓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공원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져 죽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는 재벌집 사위가 되어 회사 사보편집실에서 일하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여기에 그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아르바이트생, 은퇴한 경찰로 사립탐정 일을 하는 병든 남자와 그를 찾아온 한 여고생과 그 엄마, 처음 죽은 남자가 들른 편의점 주인 남자와 그곳에서 일하던 점원. 전혀 연관이 없어보이는 이 점같은 인물들이 어찌나 매끄럽게 연결되어 말 되는 커다란 그림을 만드는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게다가 그는 늘 범인을 괴물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에게 상처입은 인간으로 보아서 읽고 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른바 '휴먼 미스터리'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또 새로운 작가를 만나느냐, 이 작가의 또 다른 걸작 500쪽 세 권짜리 '모방범'을 주문할까를 놓고 갈등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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